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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소식

[퍼온글] 신영복 고전강독 마지막회

2003.06.17 13:51

진석용 조회 수:7482 추천:272

안동규 아저씨의 즐겨찾기 사이트 www.pressian.com 에서 퍼왔습니다.
좀 길지만, 마지막 산문이 인상적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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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신영복 고전강독<166ㆍ끝> 제13강 강의를 마치며-20
2003-04-07 오전 9:15:37



최근에 유전정보와 생물학에 관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시서화(詩書畵)와 관련된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서화와 같은 예술적 정서와 감성(感性)은 아날로그이며 우뇌(右腦)의 작용이라는 것이지요. 좌뇌(左腦)가 분석적이고 의식적인 정신활동과 관계되는 것임에 비하여 우뇌는 정감적이고 잠재적인 사고가 진행되는 부위라고 합니다.

시서화의 필요성에 관하여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좌뇌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왕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조금 더 이야기하지요. 뇌세포는 약 5백억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5백억 개의 뇌세포는 청소년기에 완성되고 25세 전후를 정점으로 하여 매일 10만개씩 죽어간다는 것이지요. 50대, 60대에는 즉 노화가 진행될수록 죽어가는 세포의 수가 20만개, 30만개로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뇌세포의 감소는 좌뇌우세(左腦優勢)의 인간형보다 우뇌우세(右腦優勢)의 인간형의 경우가 더 더디게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노화방지를 위하여 우뇌활성이 요구된다는 것이지요.

물질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계산이나 분석 등 디지털 환경이 강화되면서 좌뇌가 발달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좌뇌의 발달은 우뇌의 발달을 저지하고 도리어 우뇌세포의 소멸을 촉진한다는 것이지요.

예술적 정서를 길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어쩌다 노화방지로 바뀌어버렸습니다만 시와 산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더구나 한글의 구조는 서양문자인 알파벳과 마찬가지로 표음문자(表音文字)입니다. 디지털입니다. 반대로 한자(漢字)는 아날로그입니다. 상형문자이지요.

아날로그인 한자(漢字)에 비하여 한글과 알파벳은 우리의 뇌를 좌뇌우세로 유도한다는 것이지요. OX식 사고방식이 가장 첨단적인 디지털인 것은 물론입니다. 지금 이야기한 것은 물론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문사철보다 시서화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하는 일화의 하나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시간관계로 시와 산문을 읽지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종원(柳宗元) 시 한편과 산문 한편을 소개는 하는 것으로 강독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유종원(773-819)은 유우석(劉禹錫) 등과 함께 왕숙문당(王叔文黨)이라는 혁신정치집단을 만든 개혁사상가였습니다. 그러나 귀족 관료 그리고 번진(藩鎭)세력이 연합한 보수집단의 반격으로 말미암아 실패로 끝나고 지방관료로 강등됩니다. 그리고 지방에서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봉건론(封建論)’ ‘천설(天說)’은 역사인식에 있어서의 진보성이 높이 평가됩니다. 당시의 유가들의 일반적 견해와는 달리 군현제(郡縣制)가 필연적임을 역설하여 진시황의 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으며 특히 ‘천설’에서는 천명론(天命論)과 봉건적 지배체제를 강력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서 한유(韓愈)와 더불어 당대의 고문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고문운동이란 시경(詩經)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개혁운동임은 물론입니다. 문장은 한유와 겨루고 시는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다음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5언절구 ‘강설(江雪)’은 당대 이후 인구에 회자되는 명시로 꼽히는 것입니다. 이 시는 짧은 시구로 마치 눈앞에 보여주듯 선명한 그림을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이 함의하는 메시지가 칼끝처럼 날카롭습니다. 먼저 시를 함께 읽어보기로 하지요.

江 雪




天山鳥飛絶 萬徑人踪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산에는 새 한마리 날지 않고
길에는 사람의 발길 끊어졌는데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홀로
눈보라치는 강에 낚시 드리웠다.

이 시가 그려 보여주는 그림은 매우 선명합니다. 동양화에서 자주 보는 풍경 같기도 하고 도연명(陶淵明)의 전원(田園)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풍설이 휘몰아치는 강심(江心)에서 홀로 낚시 드리우고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은 필시 그의 자화상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시에 관련된 시화(詩話)를 따로 접할 수 없어서 정확한 시작의도를 알 수 없지만 이 시에서 우리가 읽게 되는 것은 그의 고독한 고뇌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개혁의지의 끝없는 좌절로 점철되어 있다는 침통한 역사관입니다.

다음은 유명한 ‘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입니다. 전문(全文)은 너무 길기 때문에 앞부분만 소개합니다. 해석만 하겠습니다. 이 글의 함의(含意)는 여러분 각자가 읽어내기 바랍니다.

郭橐駝不知何始名 病僂隆然伏行 有類橐駝者 故鄕人號曰駝
駝聞之 曰甚善 名我固當 因捨其名 亦自謂橐駝云
其鄕曰 豊樂 鄕在長安西
駝業種樹 凡長安豪家富人爲觀游 及賣果者 皆爭迎取養視
駝所種樹 或遷徙無不活且碩茂 蚤實而蕃
他植木者 雖窺伺傚慕 莫能如也
有問之對曰 橐駝非能使木壽且孶也 以能順木之天 以致其性焉爾
凡植木之性 其本欲敍 其培欲平 其土欲故 其築欲密
旣然已勿動勿慮 去不復顧
其蒔也若子 其置也若棄 則其天者全 而其性得矣
故吾不害其長而已 非有能碩而茂之也
不抑耗其實而已 非有能蚤而蕃之也
他植木者不然 根拳而土易 其培之也 若不過焉 則不及焉
苟有能反是者 則又愛之太恩 憂之太勤
旦視而暮撫 已去而復顧
而甚者爪其膚以驗其生枯 搖其本以觀其疎密
而木之性日以離矣
雖曰愛之 其實害之 雖曰憂之 其實讐之
故不我若也 吾又何能爲哉

“곽탁타의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곱사병을 앓아 허리를 굽히고 걸어다녔기 때문에 그 모습이 낙타와 비슷한 데가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탁타’라 불렀다. 탁타가 그 별명을 듣고 매우 좋은 이름이다, 내게 꼭 맞는 이름이라고 하면서 자기 이름을 버리고 자기 역시 탁타라 하였다.

그의 고향은 풍악으로서 장안 서쪽에 있었다. 탁타의 직업은 나무심는 일이었다. 무릇 장안의 모든 권력자와 부자들이 관상수(觀賞樹)를 돌보게 하거나, 또는 과수원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과수(果樹)를 돌보게 하려고 다투어 그를 불러 나무를 보살피게 하였다. 탁타가 심은 나무는 옮겨 심더라도 죽는 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잘 자라고 열매도 일찍 맺고 많이 열었다. 다른 식목자들이 탁타의 나무 심는 법을 엿보고 그대로 흉내내어도 탁타와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가 많이 열게 할 능력이 없다. 나무의 천성을 따라서 그 본성이 잘 발휘되게 할 뿐이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그 뿌리는 펴지기를 원하며, 평평하게 흙을 북돋아주기를 원하며, 원래의 흙을 원하며, 단단하게 다져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심고 난 후에는 움직이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말 일이다. 가고 난 다음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심기는 자식처럼 하고 두기는 버린 듯이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나무의 천성이 온전하게 되고 그 본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며 감히 자라게 하거나 무성하게 할 수가 없다. 그 결실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며 감히 일찍 열매맺고 많이 열리게 할 수가 없다.

다른 식목자는 그렇지 않다. 뿌리는 접히게 하고 흙은 바꾼다. 흙 북돋우기도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한다. 비록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이 지나치고 그 근심이 너무 심하여 아침에 와서 보고는 저녁에 와서 또 만지는가 하면 갔다가는 다시 돌아와서 살핀다.

심한 사람은 손톱으로 껍질을 찍어보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사하는가 하면 뿌리를 흔들어 보고 잘 다져졌는지 아닌지를 알아본다. 이렇게 하는 사이에 나무는 본성을 차츰 잃게 되는 것이다. 비록 사랑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해치는 일이며, 비록 나무를 염려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원수로 대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고전강독 끝>

오늘로 ‘신영복 고전강독’을 마칩니다. 프레시안이 창간되던 2001년 9월 24일 시작, 장장 1백66회를 계속하며 진한 감동 속에 화제가 된 명강의였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프레시안 독자를 위해 강의 내용을 다시 원고로 꼼꼼히 정리해주신 신영복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처음부터 끝까지 열독하며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신영복/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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