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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소식

[펀글] 한국현대사 -- 노무현후보 홈페이지에서

2002.12.08 15:14

송홍엽 조회 수:3726 추천:252

글 제목 한나라당 지지하는 연세대생에게

필명 늙은 고학생(daych) 날짜 2002-12-07 오후 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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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글을 시작하기 앞서
학생처럼 이회창후보의 지지자로 부터
오해를 피하기위해 나에 대해서 먼저 밝히겠다.

나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현재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유학중이고,
30대의 두아이를 가진 가장이다.

나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현재 농사를 짓고 계시며,
집안 형편은 학생처럼 객관적으로
중하에 속한다.

지금 내가 유학을 하고 있는 것은
8년간의 직장생활에서 모은 돈이며,
어느 봉사단체의 장학금을 받으며 학비를 충당하고 있다.

나는 정치라는 것을 잘 모른다.
이제껏 한국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정치에 신물이 났던 사람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정치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해서 기억한다.

글을 쓴 학생이 조금 착각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하겠다.

한국은 아직 정치선진국이 아니다.
한마디로 학생이 생각하는 것은 이상이다.
즉,
한국의 정치는 아직 정당의 정치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는 아직 국민에게 갚아야할
부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부채는 아직도 과거의 청산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부분이다.

이 역사의 인식이 없다면,
외면으로 번지르르해 보이는
한나라당을 지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 한국의 정치와
한나라당의 역사를 보자.
과연 학생이 그렇게 당당하게
지지한다고 말 할 수 있는가를.

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으로 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정치역사는 질곡의 길을 걸어왔다.

3공화국, 즉 유신정권은 정권 연장을 위해서
자기맘대로 법을 바꾸었으며,
그 공포정치는 이루말할 수 없었다.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하던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 끌려갔으며,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부하였던
김재규의 총에 의해 살해당한다.

국민들은 어쩌면 이나라에 민주화가 올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기시작했다.
그 것을 우리는 80년의 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는 탱크로 중무장한 군인들을
이끌고 국회를 점령한다.
그리고, 80년 5월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면서,
민주화를 말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경고를 한다.

결국 전두환의5공화국은 정권 탈취에 성공한다.
- 이 쿠테타에 대해서 모른다면
아직 학생은 나와 대화를 할 자격이 없다.

국민들을 학살하면서 까지 탈취한 정권은
민주정의당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을 꾸미고,
민주화 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들을 구속하고
고문하며, 정권을 유지해 나갔다.

이 사이 언론들은 통폐합이 되고,
단지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
찬양하는 언론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는 전두환 찬양일색이었으며,
그는 곧 구국의 영웅으로 불리워졌다.

정부에 대해서 비판하는 자는 즉시 처결되었으며,
사회정의라는 명목으로
삼청교육대라는 곳에서 고문과 폭력이 자행되었다.

학생은 80년대를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 80년대에는 길에 지나가는 모든 대학생들의
가방이 경찰들에 의해서 조사되었으며,
경찰들은 소위 "용공화 학생"들을 수색해 내기위해
하숙방과 자취집을 수시로 덮치며 연행하곤 했다.

대학가는 매일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범벅이 되었으며,
그 때 흘렸던 많은 피는 아쉽게도 보상받지 못했다.

5공화국의 끝이 보이면서 국민들은
다시 민주화의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6월 항쟁을 통해서 얻어낸 대통령 직선제는
양김씨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의 실패로
전두환의 정권은 쿠테타의 동지였던,
노태우 정권으로 넘겨졌고, 국민들이 기대하던
민주화의 싹은 무참히 밟혀졌다.

그리고,
당시 김대중과 함께 소위 민주화의 기수였던
김영삼은 집권을 위해 국민들을 배신하고,
국민들의 적이었던 노태우와 합당을 이뤄냈다.

소위 이 문민정부는 신한국당이라는 명칭으로
당명칭은 바꾸었지만, 전두환정권의 민주정의당 소속의
의원들이 그대로 앉아 있는, 즉, 광주의 피를 빨며
자신들의 배를 불린자들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문민정부의 부패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 비뚤어진 3개의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의 정치와
경제는 심하게 왜곡되고, 가진 자들은 그 배를 더 불려나갔다.

이 사이 기존 유신정권과 군부정권을
거치면서 호의호식했던 자들,
그 중 이회창은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바꾸고,
대통령의 후보로까지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급기야, IMF를 맞게되었고,
지금의 경제의 구조는 이 3개의 정권때의
부채를 갚아나가는 시기가 되어버렸다.

다시 3공화국으로 거슬러 올라가,
3공화국의 박정희는 김대중 때문에
낙선을 할 뻔했었다.

당시의 김대중은 경상도를 포함한
전국의 고른 지지를 얻은 후보였다.

그는 정권을 잃을까 우려하여,
대통령선거를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꾸고, 김대중을 죽이려고 까지
시도했었지만, 국제의 여론에 눌려
목숨만은 살려 주었다.

전두환 역시 김대중에게 사형선고 까지
내리고 죽이려고 했었지만,
그 역시 국제의 여론 앞에서는 김대중을 죽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정권들은 정권의 장악을 위해서
김대중의 출신이었던
전라도 지역을 심하게 왜곡함으로서
(전라도는 빨갱이다. 사기꾼이다. 등등의)
경남북지역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소위 “지역감정”의 구도를 만들어내었다.

학생은 지역감정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무시한다고 하지만,
한국의 역대 정권은
이 지역감정으로 이뤄진 정권이다.

즉, 투표인원으로서 다수의 지역인
경남북일대를 장악하기만 하면
어떤 정권이든지 들어설 수 있는
모순점을 역대의 정권들은 알고 있었고
그 것을 재생산해내며 부패한 정권을 유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97년 대선에서 이인제의
독자 출마는 경남북 표를 분산시켰고,
이회창은 낙선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역시 반 쪽만의 힘을 얻어
당선된 것이기 때문에 야대여소의
구조 앞에서 김대중 정권의 무능함은
충분히 예상이 되었던 부분이었다.
또한, 그 부패가 기존의 정당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적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명의 신선한 정치인을 알게되었다.

노무현. 그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김영삼의 야합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발했던
사람이며, 또한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정권을 탈취하는 것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그는 민주화를 위해서 거리로 뛰쳐나왔으며,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서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회창은 단한번의 민주화에 대한
공로없이 광주의 피를 마시며 자라난
정부들의 따뜻한 보호 아래에서
둥지를 틀고, 이제 이만큼 피로 만들어진
민주화를 바탕으로
더더구나, 5공 6공의
정치꾼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역사의 부조리가 어디있는가?

그가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있다고 한들,
국민의 피를 빨며 배를 채웠던 인간들과 함께
호의호식하던 사람이
어떻게 한 국가의 원수로서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능력보다도 도덕이 문제다.
이제껏 우리는 도덕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대통령을 가진 불행한 민족이었다.

도덕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대통령은
다시 부패를 낳고, 그 부패는
다시 국민들의 피를 요구한다.

한국의 역사는 반드시 다시 씌여져야 한다.

현실만 보지마라.
눈에 보이는 것 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정치역사는 국민앞에 대죄를 지었던
지금의 한나라당에 있는 5,6공, 그리고 문민정부의
잔당들을 뿌리뽑아 버림으로서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그 때만이 진정한 국민통합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이 기대하는 것 처럼
금방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마라.
이 왜곡된 정치구조는
수십년에 걸쳐서 이뤄진 것이다.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다시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역사를 기억하라…
역사는 현실의 거울이다.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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