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 교수의 '창의적 수학교육'
"수학을 푸는 대신 이야기해봐요"
MS연구원직 박차고 국내 강단에
좋아하고 잘하느냐 관심보다 한국학생, 외부조건에만 민감
주입식 교육 해체작업에 온 힘… 토론·합의로 개념정립 훈련 중
김정한(44) 연세대 수학과 교수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연구소 연구원 자리를 박차고 9월 연세대 교수로 부임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수학자의 귀국이라는 사실 외에 관심을 끌 이유는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류 대학이지만 MS연구소에서 받았던 연봉보다 깎인 연봉과 미국에 남은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세대 전임 교수로서 첫 학기를 보내고 있는 그는 ‘주입식 교육 해체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김 교수는 1995년 램지 수 이론에 대한 논문이 세계적 저널인 <사이언스>에 실리면서 이름을 드날렸다. 97년 수학자 사이에서 알아주는 풀커슨 상을 받았고 MS 연구소의 유일한 한국인 연구원으로 스카우트됐다.
“30대에는 연구를 잘 하는 게 의미가 컸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어려운 문제를 풀어 유명해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더군요. 서로 토론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게 연구인데, 그러려면 우리 사회가 함께 발전하고 받쳐주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김 교수의 눈에 비친 우리 학생들은 어떤 모습일까. 주입식 교육의 병폐가 심각한 상태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비단 교실 안에서의 모습만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지시를 하면 잘 합니다. 그런데 네가 하고싶은 연구주제를 정해 오라고 하면 이야기가 잘 안 돼요. 학생들은 유학을 갈 수 있는지, 공부 끝나고 전망이 좋은지 하는 외부적인 이유를 찾아 댑니다.
저는 ‘네가 좋아하느냐, 잘 하느냐’는 내부 동인을 요구하는데, 설득이 잘 안 되더군요.” 그는 이처럼 비주체적인 모습을 ‘하인 마인드’라고 부른다. 거의 화를 내다시피, “전문인이 아닌 기회주의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내가 절대 도울 수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창의성을 자극하려는 김 교수는 ‘수학 이야기 쓰기’라는 수업 방식을 택했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풀라고 하지 않고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 발표케 하는 식이다. “교과서에 나온 문제를 대상으로 삼아 스토리 프로젝트를 시킵니다. 이 수학 정리가 왜 대두되었으며,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를 이야기로 죽 구성하는 거죠.”
수학 문제를 푸는 연습이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이러한 스토리 구성이 수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수학 연구란 개념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과 각종 경시대회에서의 수학이, 수학자들이 연구하는 수학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김 교수는 주입식 교육의 결과로 빚어지는 창의력 부족이 수학이라는 학문과 학생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뿌리 박혀 있다고 여긴다. 자기 주장만 되풀이할 뿐 토론과 합의가 어려운 것도 주입식 교육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노벨상 몇 개 받는다고 우리 사회가 달라지나요? 노벨상 그거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사회가 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2006년 11월 27일 한국일보 [기사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