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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엽 교수의 잡글

[펀글] 교육의 의미

2008.02.19 23:03

송홍엽 조회 수:3025 추천:353


  
  
  

‘교육은 칭찬할 만한 것이지만,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가장 중요한 것들은 교육으로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한다.’ 아일랜드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했던 이 말은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수학이나 과학 교육만 따져 봐도 그렇다. 학교를 졸업한 어른들에게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친 수학, 과학을 물어본다면 단 10%도 기억해 내지 못할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친 ‘지식’은 거의 전수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학교의 의무는 인간의 지적 탐구가 얼마나 경이롭고 흥미로운 것인가를 깨닫게 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교는 더더욱 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학교를 졸업한 어른들의 독서량이다. 학교는 수학 지식을 가르치진 못했더라도 수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게 하여 졸업한 후에도 스스로 그것을 즐기면서 탐구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칠판에 고인 지식을 12년 동안 우리 머릿속에 구겨 넣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


지식보다 생각하는 법 가르치길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대부분은 학교를 졸업한 후에 단 한 권의 수학책도 사서 읽어본 적이 없다. 우리들의 학교는 배움을 사랑하는 어른들을 만들지 못하고, 학창시절의 끔찍함이 떠올라 배움을 회피하는 어른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언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세계 57개국 중고등학생 4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한국 학생들의 이공계 분야 성적이 11등으로 떨어졌다며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난 5년은 대한민국 중고등학생들이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낸 ‘사교육의 부흥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적이 나온 것은 학교교육의 실패뿐만 아니라 학원교육의 무능함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5년은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사실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통계는 국제학력평가 순위가 아니라 수학과학국제비교평가회(TIMSS)에서 실시한 중학생들의 과목흥미도 조사 결과다. 2003년 각국의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조사했더니 “과학 수업이 즐겁다”고 대답한 학생이 싱가포르 42%, 미국 35%, 호주 29%인 데 비해 한국은 9%에 불과했다. 이들 학생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과학책을 집어 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인지심리학자 로저 생크는 ‘위험한 생각들’(존 브로크먼 엮음·2006년)이란 책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 한다’고 단언한다. 그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가르치는 대신 교사를 기쁘게 하고 친구들과 경쟁하는 법을 가르치느라 열을 올리고 있으며, 숟가락으로 받아먹은 것을 제대로 토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본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학교를 폐지하라고 주장하는 생크의 생각이 위험하게 들리겠지만, 모든 청소년이 같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되새겨 볼 만한 주장이다. 학교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우리들의 학교는 학생들을 ‘암기된 지식의 양’과 ‘문제풀이 능력’으로 한 줄 세우기를 하는 곳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우리들의 소중한 자녀가 그 끔찍한 경쟁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학교보다 더 끔찍한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제 의무를 다했다고 믿지 않는가.


한줄로 세우는 교육 바꿔야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우리나라의 학교는 청소년들을 불행하게 만들며 그래서 유해하다. 이 불행의 사슬을 끊는 방법 중 하나는 학교가 학생에 대한 평가에 순위를 매기지 않고 그 학생에게만 일러 주는 것이다. 오로지 그 학생의 배움을 북돋우고 부족한 부분을 일깨워 주는 데에만 평가 결과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학교가 학생들을 비교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대학이 원한다고? 그렇지 않다. 대학이 원하는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끝없이 매진할 열정적인 젊은이이지, 줄서기에 노련한 학생이 아니다.  


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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